‘맞벌이 가정’ 위한 제도, 안정적 정착 필요 절실
최근 치과기공계 현장에서는 숙련된 기술과 경력을 갖춘 30대 후반 이상의 여성 치과기공사 찾기가 쉽지 않다. 졸업 후 경력을 쌓아가던 10년차 내외의 여성 치과기공사들이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다니던 기공소를 퇴사하는 ‘경력단절’ 사례가 빈번해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지난 6월~8월까지 두 달 동안 12세 이하 자녀를 둔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서울시 양육자 생활실태 및 정책 수요조사’(여성 1482명, 남성 523명)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실제 출산 전후 출산휴가는 전체 응답자의 45.7%가 경험했다고 답변했으며, 육아휴직은 36.7%, 배우자 출산휴가는 24.0%가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특히 제도 신청 시 남성과 여성 모두 ‘직장 내 경쟁력 약화’를 가장 크게 걱정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동료들의 업무 부담, 사용 기간 소득 감소 등도 걱정한 부분이었다. 아울러 응답자 여성 중 절반 이상인 52.1%가 임신이나 출산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법은 출산휴가 보장, 현실은?
그렇다면 실제 치과기공계에서는 출산과 육아 관련 제도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김진홍(플러스치과기공소) 소장은 “일반적으로 치과기공사들은 3개월의 출산휴가를 다녀오고 복귀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워킹맘으로 일하고 있는 기공사들이 많지만 육아를 병행하며 기공사로 일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현실적으로 육아 휴직을 보장하는 치과기공소는 많지 않다. 워킹맘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버티다가 결국에 업계를 떠날 결정을 하는 여성 치과기공사들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출산 전후 휴가(유산·사산 포함)는 90일(다태아 120일)이 보장돼 있다. 이런 법률을 기반으로 치과기공계 역시 다수의 기공소에서 90일 간의 출산 휴가는 보장되고 있으나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는 것에 있어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 비해 일부 개선 됐지만 여전히 야근이 잦을 수밖에 없는 치과기공소 환경 상 퇴근 시간이 불규칙한 경우가 아직도 많다. 이 때문에 출산휴가 후 복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하는 경우들이 다반사다. 이를 증명하는 점은 한창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는 나이대인 30대 중후반 이상의 여성기공사들을 현장에서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한 여성 치과기공사들은 이후 육아에 전념하거나 이후 새로운 직종으로 변경하기도 한다. 그 외 일부는 치과기공계로 돌아오기도 한다. 개개인의 기술력이 필요한 치과기공의 특성과 현재 업계의 인력난이 더해져 나타난 결과다.
경력이 단절됐던 여성 치과기공사들이 현장으로 복귀할 길은 열려있는 셈이다. 치과기공계가 전반적으로 디지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지만 여전히 기공사의 손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고, 치과기공사 개인의 노하우도 중요시 되기에 재취업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 과정 또한 넘어야할 장벽들이 존재한다. 출생 후 2년까지인 영아기를 지나더라도, 초등학교 입학 전인 유아기 역시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기에 치과기공소 근무와 병행하는 것이 녹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공사들이 찾은 방법이 파트 타임 근무이다. 포세린 파트를 포함해 스테인, 컬러링 작업 등 건 당 작업할 수 있는 일 위주로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는 개념의 기공사들이 늘고 있다. 온종일 근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수량의 업무만 작업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육아를 병행하는 치과기공사들이 선호하는 근무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기 파트 타임 근무는 정규직 고용으로 채용이 힘들어 고용 안정성 또한 낮으며 종사자의 경력 인정과 역량 증진 등에 어려움이 있어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많은 여성 치과기공사들이 보다 장기적인 해결 방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삼남(대한여성치과기공사회) 회장은 여성 치과기공사들의 업무와 회무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오 회장은 “현재 대한치과기공사협회를 비롯해 지부회의 여성 대의원 비율이 10%가 되지 않는다. 일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치과기공사들의 비율을 생각할 때 현저히 적은 숫자다. 여성 치과기공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여성 대의원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여성 치과기공사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회무에 뛰어들 때 치과기공계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다. 여성 치과기공사들도 지금보다 더 능동적으로 행동해 업계에서 앞서나가도록 함께 힘쓰길 바라며 그 변화에 여성회가 동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복직 여성 치과기공사들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급변하는 최근 치과기공계의 트렌드이다. CAD/CAM을 필두로 구강스캐너 보급과 함께 더욱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3D프린팅과 모델리스 작업 등 하루가 다르게 치과기공계는 다양한 디지털 장비를 도입하고 그 활용도를 높여가고 있다.
치과기공계의 디지털화는 201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최근 그 변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등장하고 변화하는 장비와 소재들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근무하던 치과기공사들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물며 몇 년간의 휴직 기간을 거친 치과기공사들 입장에서는 과거에 배운 노하우가 아닌 새로운 장비와 작업 방식 등을 배워야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모델리스 작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디지털 장비에 대한 이해는 기공사들의 필수 역량이 되어가고 있다. 공통적으로 변화한 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필요로 하고 있어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여성 치과기공사들이 재취업 이후 디지털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대한여성치과기공사회는 최근 여성 치과기공사들의 역량 증진을 위한 W-Study를 개최해 디지털 장비와 재료에 대한 이해를 돕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육아 근로기간 단축제’론 부족
육아로 인한 휴직과 퇴사 등은 다양한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치과기공계 또한 이런 문제를 해결해나갈 노력이 필요하며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이다.
사업주가 해당 근로자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한 경우 주당 근무 시간을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로 하며 사업주는 근로자가 일한 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하며 이를 정부가 일부 지원한다. 이미 틀을 갖추어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시간을 단축하지 않고 근무 시간대를 다양화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정치과기공소의 경우 현재 근무 조를 2조로 나뉘어 아침 출근 조는 6~7시 경 출근해 오후에 퇴근, 오후 출근 조는 점심시간 이후에 출근해 10시 경에 퇴근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작은 기공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실행한 방식이었지만 직원들이 특별히 연차를 사용하지 않고도 병원, 관공서, 금융 등 개인 일정을 소화 수 있고 특히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직원의 경우 자녀의 등원 전, 혹은 하원 후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출산과 육아 등을 통한 맞벌이 가정의 어려움은 개인과 가정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미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출산과 육아 관련 제도를 안정적으로 업계에 정착하기 위해 협회와 경영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 근로자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사회적 변화와 상황에 발맞춰 치과기공계도 여성 치과기공사의 출산과 처우, 그리고 재취업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