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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원장의 역사이야기] 미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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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원장의 역사이야기] 미실4
  • 안승호 원장
  • 승인 2013.05.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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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에게 여러 남자가 있었지만 가장 미실이 총애하는 남자는 연하남 설원이였어요. 설원의 아버지는 설성이라는 사람인데 낭도 출신이었어요. 낭도란 화랑을 따르는 무리인데 그 중 하나였어요, 출신이 한미하다는 얘기입니다.

 

설성은 얼굴이 아름답고 교태를 잘 부려 귀족 부인의 애인이 되었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설원이였어요. 설원 또한 풍채가 아름답고 옥적(옥피리)을 잘 불었으나 출신이 한미하여 낭도들이 받들 생각이 없었어요.

미실은 임금의 총애(애첩)로서 호령하여 낭도들을 설원에게 예속시키고 뇌물을 주어 설원을 따르게 했어요. 미실은 자신의 핫바지 호구 남편 세종에 이어 애인인 설원을 제 7대 풍월주(화랑도 대장) 자리에 올렸지만 화랑들이 잘 따르지 않았어요.


이에 미실은 이 설원에게 혈통 좋은(진골) 38세의 과부를 아내로 맞도록 합니다. 미실의 조치 덕택에 설원은 풍월주로서 위치를 굳히게 됩니다. 설원을 따르는 무리는 향가鄕歌를 잘 했고 유람을 즐겼으며 골품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주로 귀족 자제의 날라리들이 많았습니다.

설원은 평소 미실과 더불어 상통相通하였으나 이때에 더욱 꺼리고 삼가는 것이 없게 되었어요.


문노는 554년, 555년 각각 백제와 고구려를 치고 큰 공을 세웠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어요. 부하들의 불평이 있자 “대저 상벌이라는 것은 소인의 일이다. 그대들은 이미 나를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어찌 나의 마음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삼지 않는가”라고 하였어요.

문노는 537년생이에요. 세종이 542년생, 미실이 545년생, 설원은 549년생, 미생은 550년생으로 추정돼요. 세종이 풍월주가 되었을 때 세종은 문노에게 가서 “나는 감히 그대를 신하로 삼을 수 없소, 청컨데 나의 형이 되어 나를 도와 주시오”라고 하죠. 세종이 화랑의 풍월주가 되었지만 강력한 무예의 소유자 문노와 그를 추종하는 많은 무리 때문에 문노를 존중치 않을 수 없었어요. 실제 세종은 문노를 형님으로서 존중했고 문노는 세종을 대장으로 잘 받들었습니다.


세종은 진흥왕에게 문노의 전공을 말하고 그에 맞는 상을 요구하였고 왕은 문노에게 급찬이라는 벼슬을 내렸으나 문노는 받지 않았어요.

한 번은 문노의 수하들이 문노를 위하여 사사로이 사람을 죽였어요. 이에 조정에서 벌을 주려하자 세종은 “의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상은 가하나 벌은 불가하다”면서 문노를 감싸 주었어요. 여러 세력들이 문노를 차지하려 하였으나 문노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가야계 낭도들의 우두머리로 남아 있었어요.

문노의 낭도들은 무사를 좋아하였고 호탕한 기질(협기)이 많았어요.


진흥왕 죽고 진지왕이 즉위하였어요. 미실은 진지왕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권력을 유지하려 하였으나 진지왕은 자신의 아내 지도왕후와 더욱 가까이 지내고 미실을 멀리 하였죠.

미실은 자기 덕택에 왕위에 오른 진지왕의 배반에 대한 벌로 진지왕의 폐위를 결정하고 왕을 제거하려고 하였어요. 거사를 하려하였으나 문노의 도徒(낭도들)가 불복할까 염려하여 일단 멈추었습니다. 진지왕의 지도왕후는 가야계로서 문노와 같은 라인이였어요.

진지왕도 이런 정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노 또한 진지왕에게 충성을 다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습니다. 미실 측에 경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미실은 생각합니다. 문노를 나의 편으로 삼아야 진정한 권력을 쥘 수 있구나. 문노는 가야계 출신으로서 그들의 맹주가 될 수는 있지만 가야는 이미 멸망한 세력. 문노는 자신이 신라의 최상 계급(골품)으로 출세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재야의 지존으로 걍 살다 갈 생각으로 있을 거야. 그러니 왠만한 벼슬을 내려도 받지 않고 저렇게 초연한 척 하고 살지. 그러나 말이야, 만약 문노가 신라의 최상층 귀족(골품)이 된다고 해도 저럴까.

또 문노를 따르는 저 가야계 무리들. 쟤네들도 자신들이 신라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거야. 그들에게 자신들이 신라 사회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면 반신라 감정(반미실 감정)을 충분히 없앨 수 있을 거야.

우선 아랫것들의 불만을 줄이고 문노의 감정을 조절한 후에 문노에게 딜을 시도해 봐야겠군.


그러나 미실에게는 설원과 문노와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가 또 있었어요. 문노가 전장에서 공을 세웠지만 설원이 가로 채어 상을 받았기 때문에 문노 측에서는 설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어요. 문노는 세종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미실은 싫어했어요.

또한 미실을 등에 업고 설쳐대는 설원을 보면서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미실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문노가 자기편이 되도록 하는 대책을 세웠어요.

문노는 국선이었고 설원은 풍월주였어요. 국선은 무림의 지존으로서 명예직 같은 것이고 풍월주는 화랑이라는 실질적인 세력을 갖춘 직이였어요. 누가 위냐 아래냐 라는 의미는 없어요, 그러나 미실은 국선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문노에게 하라고 설원에게 명하죠.


미실은 설원에게 명하여 문노에게 무릎을 굽혀 섬기도록 하였어요. 설원이 반발하다가 이렇게 하자 문노 측 낭도들도 기꺼이 설원에게 복종하였어요.

그렇게 한 후 미실은 설원 다음 풍월주로 문노를 지명합니다. 새 풍월주가 된 사람은 그 전前 풍월주에게 아래에서 절(하배下拜)을 하고 부하가 되는 선언을 합니다. 그러면 전 풍월주는 검장劍仗을 주면서 ‘네 형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하면서 격식을 치루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제 문노는 설원에게 행해야 하는 이런 절차를 거절할 수 없었어요. 자기가 받은 게 있으니까요.

미실은 설원에게 “내가 너로 하여금 먼저 굽히게 한 것은 오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설원의 한恨을 풀어 주었고 설원은 더욱 미실을 존경하며 “신의 머리카락 하나와 살갗 하나도 총주寵主(사랑하는 주인님, 애인을 높여 부르는 말)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어요.

꼬리 잘 흔들어요, 사랑받게 행동을 했겠죠. 설薛씨는 이 때에 크게 창성하였다, 원효대사(설총 아버지)도 좀 그런 면(교태)이 있어요.


미실은 화랑과 국선을 하나로 합치고 자신을 원화로 삼고 세종 문노 설원 미생 순으로 관직을 내렸어요. 문노의 도徒는 미천한 사람으로 고관에 발탁된 사람이 많았어요.

이들은 모두 문노를 신과 같이 받들었어요. 자, 이제 어느 정도 문노 주위를 정리해 주었으니 주인공 문노에 대한 배려를 해 줘야겠죠? 문노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37년생이 79년까지 결혼 안하고 있었으니까 꽤 늦은 거죠, 42세에요. 가야계로서의 한계 때문이였을거에요. 미실은 개犬한테 물려 죽은 동륜태자를 섬겼고 공주 하나를 낳은 후 5 년간 과부로 살고 있던 윤궁낭주를 문노와 결혼 시킵니다.

윤궁은 상대등(국무총리) 거칠부의 딸로서 태자를 모셨던 신라 최고위층 귀족 신분입니다. 미실과 윤궁은 종형제(사촌)지간 이구요. 문노 입장에서도 가야계라는 한계를 떨치고 일가를 이룰 수 있었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죠.

신라 최상류층이 된 문노는 진지왕을 내쫓고 진평왕을 옹립하는 데 참여한 댓가로 아찬에 이르러 비로소 골품을 얻었습니다.

아찬 벼슬을 해야 골품이 되는 건가 봐요. 골품과 육두품의 격차가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뼈骨가 주인이고 살肉은 보조이기 때문이에요.

문노가 진지왕을 폐하는 것에 갈등을 느낄 때 윤궁(문노의 아내)은 문노에게 뱃속의 아이 운명을 생각하여 잘 처신하라고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윤궁이 협박을 안 했다하더라도 문노는 이미 미실에게 무장 해제 당한 상태 아니겠습니까.
진지왕 입장에서 보면 어찌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문노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야 진지왕 입장에서 매우 간절했을 거에요. 하지만 왕비와 같은 가야계라는 것만으로는 끈이 너무 약했어요, 실질적인 딜이 있었어야죠. 명실이 상부하지 않았어요.

문노 측 낭도들에게 파격적인 관직을 주고 뇌물을 선사하는 미실을 진지왕 측에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어요.

설원과 문노의 갈등에 희망을 걸었으나 그것도 미실이 정리해 버리고, 문노 측 낭도에 대한 처우가 좋아지자 문노 측 가야계 낭도들은 친 미실계가 되어 버렸어요.

여기에 문노의 결혼은 결정타였어요, 굳히기죠. 이제 진지왕은 절에서 잡혀와 유폐되는 신세를 모면할 길이 없는 신세가 되었어요. 치밀한 준비 없이 감정 갖고 까불면 항상 이렇게 되더라구요.

미실은 진지왕의 어머니 사도태후를 앞장세워 왕을 유폐시킵니다.

색골이고 방탕하였다는 것이 죄명이죠, 어이가 내 뺨을 때려~.역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확실합니다. 미실은 매뉴얼대로 진지왕을 3 년 간 유폐시켰다가 죽였어요.


이 진지왕의 아들이 둘 있었어요, 용수와 용춘 형제. 이 형제(?)의 아들이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에요. 진지왕을 폐하고 새로운 왕을 세우는 데 이가 바로 진평왕(동륜 태자의 아들)이죠.

진평왕이 딸만 셋인데 천명공주 선덕공주 선화공주(백제의 무왕에게 시집간)가 바로 그녀들이죠. 진평왕은 진지왕의 조카에요, 개犬한테 물려 죽은 동륜 태자의 아들이구요.

진평이 왕이 되자 미실은 진평왕과 또 다시 교미합니다. 삼 십 대 후반의 늙은 마귀가 열세살의 어린 왕을 먹어 치우는 섹스는 사마귀가 떠올라요. 섹스 후 숫 사마귀를 잡아먹는 암 사마귀. 아직 미성숙한 왕인지라 미실은 섹스 후 성이 차질 않았고 설원을 불러 항상 그 모자람을 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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