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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선거인단제,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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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선거인단제, 변화의 시작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3.05.09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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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세대에선 ‘답정너’라는 것이 유행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교회 오빠들이 내가 구하라 닮았데. 짜증나. 난 구하라 싫은데. 네 생각엔 정말 닮았어?’라는 식으로 은근히 돌려서 물어보는 식이다.
‘자기, 나 요즘 살 찐 거 같애?’라고 부인이 물어볼 때처럼, 사실 평화적 관계 유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는 법이다.
다만 간혹 예상과 다른 대답을 들었을 때, 질문자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재차 질문을 하며 정해진 대답을 강요하는 대서 ‘답정너’가 유행하게 된 웃음 포인트가 있다.
‘너는 아니라지만 교회 오빠들은 정말 구하라 닮았다던데?’ 혹은 ‘나 살 빼야 하니까 오늘 저녁은 굶어’라던가.
우리 현실에서도 설득이나 이해를 위해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여 무슨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를 종종 겪게 된다. 생각이나 입장이 변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대를 맞대할 때의 그 답답함과 무력함은 결국 더 소통하려는 의지마저 꺾게 만들기 마련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치협 대의원총회에서 직선제안이 부결되고 선거인단제가 통과되었다. 이에 앞서 시행되었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치과의사의 64.8%가 직선제를 선호하였으나, 총회에서는 59.6%로 재석대의원의 2/3을 넘지 못해 끝내 부결된 것이다. 여론조사의 과반을 넘긴 직선제가 총회에서 부결되면서, 바로 그 직선제를 지지하던 과반의 치의들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일부에서는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고, 추운 겨울날 치협 건물 앞에서 삭발식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허탈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결국 선거인단제를 선택한 치협을 보면서 이것이 변화의 시작임을 읽을 수 있다. 64.8%가 직선제를 지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향후 치협에 정치적 부담과 책임감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와 필요한 사안마다 대립각을 세우며 의사 권익을 위해 노력하여 일부에서는 과격하단 평가까지 받는 노환규 현 대한의사협회장도 선거인단제를 통해 선출되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직선제 못지않게 선거인단제도 개원의의 민심을 반영하기에 충분할 수 있다.
설령 후에 선거인단제가 부족하다고 평가되면, 다시 한번 민의를 모아 직선제를 비롯한 다른 방식을 논의할 수도 있다. 의협회장 선거 방식은 대의원 간선제에서 직선제를 거쳐 선거인단제로 바뀌어왔고, 오는 2015년에는 전 회원 직선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요컨대 직선제가 절대 선인 것도 아니고, 궁극적인 목표도 아니다. 개원가 민심을 대변하는 회장과 치협을 만드는 것이 개원의들의 목표일 것이고, 선거제도는 그 목표를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일선 치의들의 민심은 인터넷 상에서, 시위 현장에서 뜨겁게 들끓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직선제라는 결과물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64.8%에게는 직선제가 치의들의 미래였겠지만, 총회에서 직선제를 지지하지 않은 40.4%가 바란 미래는 달랐다. 정치적 사안에는 정답이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40.4%가 생각한 미래는 직선제가 아니었다고 해서 그들이 틀린 것도 아니다. 기운 빠지고 지쳐서 관심을 끊거나, 미워하고 벽을 쌓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우리가 상대방에게 ‘답정너’를 요구하는 셈이 돼버리지 않겠는가.
상대방도 아주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석고는 아니어서, 어찌되었든 민의를 반영하여 60년 만에 선거제도를 바꾸는 전례를 만들어 냈다. 아가(agar)를 녹이려면 따끈한 정도면 충분하지만, 골드를 녹이려면 불타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방의 멜팅 포인트는 어느 정도일까. 일단은 우리가 충분히 뜨겁지 않았던 것으로 해두자. 총회가 아닌 치협 설문조사에서도 직선제는 2/3을 넘기지 못했었다. 무릇 아가를 녹이려고만 해도 충분히 뜨겁게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하는 법이다.
변화의 흐름은 밑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어 드디어 치협도 변화의 첫 발을 내딛었다. 아예 버티고 움직이지 않았으면 몰라도 이미 움직인 이상, 그 다음 걸음이 중요하다. 이 걸음이 어디로 갈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

 

연세루트치과 이수형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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