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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스마트 폰과 종이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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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스마트 폰과 종이차트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3.02.07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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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어에 TV가 나오게 할 것인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진료실에서 대기하는 환자를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체어 모니터에 TV나 영상을 틀어놓는 것이 정석이었다. 요즘 체어에 TV를 달지 고민하는 건 구식이다. 차라리 잘 터지고 빠른 wifi면 충분하다. 이제 환자들은 체어에서 더 이상 멍하니 TV 따위를 보며 수동적으로 앉아 기다리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카톡을 하고 뉴스를 보면서 그 시간을 능동적으로 자신의 입맛대로 활용한다. 모 광고의 카피처럼 ‘혁신은 그런 것이다’.

이런 최첨단 디지털 기기의 발달과 급속한 보급으로 의학의 기본 패러다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들 중에 이른바 ‘헬스2.0’으로 대표되는 시각이 있다. 작년에 발간되어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청진기가 사라진다’라는 책이 대표적인데, 각 개인이 24시간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디지털 기기들의 활용과, 인터넷을 통한 개인혹은 전문가 간의 의료 정보의 공유가 이러한 의료 혁신의 기본 축이라 할 수 있다.

환자가 병원에 내원하여 치료받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개 몸의 이상 인지-병원의 탐색-검사-진단-치료-경과 관찰-내원 종료-병원 평가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병원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그 중 ‘병원의 탐색’, ‘병원의 평가’에 해당되는 영역이다. 근본적으로는 환자라는 비의료전문가에 의해 행해지는 진료외적인 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치과계의 물을 흐리는 각종 마케팅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오히려 환자의 알권리 및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정보의 질과 신뢰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치과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인터넷, 스마트폰, 디지털 기기들에 대해 인상이 좋을 수가 없다. 뭐가 소셜 네트워크고 뭐가 디지털 혁신인가 싶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돈만 밝히는 치과 소개 앱들이 자꾸 생기면서 정말이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니까.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의학에 미치는 영향은 그 이상이다. 의학의 핵심적인 영역들에서도 이미 혁신은 시작되었다. 개개인이 몸의 이상을 인지하고,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카톡 머신으로만 쓰이기엔 너무나 성능이 좋으신 우리네 스마트폰, 각종 디지털 기기들은 간소화, 개인화된 검사장비로서 기능을 충분히 수행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몇 가지 앱만 설치하거나 액세서리 장비만 구입하면 각종 생징후의 검사 및 수면 시 뇌파, 우울증, 당뇨, 약 복용 순응도까지 검사가 가능하다. 그것도 병원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아닌 일상 속에서 좀 더 장기간의 데이터들을 손쉽게 모을 수 있다. 어디 그것 뿐인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4개의 염기를 통해 정말이지 유전자 단위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디지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게놈’이 있다. 게놈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유전체학의 장밋빛 전망들이 아직까지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이제는 좀 더 손닿을 거리까지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다.

검사 방법의 변화와 유전체학의 발달 모두 약물의 처방이나 특정 질병의 발생, 진행, 예후 등에 있어서 [개인별 맞춤 의학의 시대]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문제는 그러한 개개인의 정보들을 어떻게 의학적으로 다룰 것이냐의 문제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대국민적으로 공론화된 이슈는 아니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개개인의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는 시스템 상의 오류로 인한 손실은 생각보다 크다. 주로 투약 과정에서의 오류나 불필요한 수술과 시술 등으로 인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1999년 미국 의학원의 보고서에서는 이런 의료 오류로 인해 매년 최소 4만 4천명에서 최대 9만 8천명의 사망과 최소 170억에서 290억 달러의 금전적 손해가 발생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러한 오류들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 의사, 병원을 연결해주는 통합된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이 필요한데 사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병원들마다 제각각 쓰는 전자차트의 종류가 다르고 시스템이 다르기도 하고, 그 동안 누적된 기록 자체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의사가 필요에 따라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단 시간에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각 병원간의 단절된 의료정보가 갖는 한계점과 그 폐해에 대해 지적이 된 상항에서 정보의 통합이 이뤄지는 것은 늦든 빠르든 시간문제다. 그리고 정보의 원활한 통합을 위해서는 일단 의료정보의 디지털화가 필수적이다. 이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까지 병의원에 전자의무기록을 적극 추진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심평원이 ‘의약품안심서비스’(DUR)를 적극 추진하면서 국가적 차원의 의료정보 관리가 걸음마 수준일지언정 중요한 한 걸음을 뗀 느낌이다. 심평원이 세계적 추세에 맞춰 큰 그림을 그린다고 전제했을 때, 개인적으로 시일은 오래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병의원을 아우르는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이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본다.

종이 차트냐, 전자 차트냐의 문제는 이제 단순히 차트를 작성하는 의사의 편의성이나 보관의 효율성을 넘어서 국가적으로 의료 정보를 통합하고 관리하는 차원의 문제이다. 미국의 병의원은 2016년 이후로는 전자차트를 쓰지 않으면 패널티를 부과받는다고 한다. 시대 흐름상 대의명분은 전자차트 쪽으로 기울었다. 체어에서 최신 스마트폰을 갖고 놀며 기다리는 환자를 진료하고 나서 치과의사는 종이 차트에 기록하는 풍경은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봤을 때 신구의 갈등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개원의들이 종이 차트를 쓰는 데에는 사실 익숙함이 주된 이유겠지만, 버리지 못하는 몇 가지 사소한 이유도 있다. 개원의들은 참 힘들다. 우리에게는 몇 년이 남았을까? 우리 치과계가 부디 현재의 첨예한 문제들을 현명하게 잘 해결하여 다가올 시대 변화에도 앞서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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