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일행이 길을 가다가 쉬기 위해 잠시 멈췄는데, 타고 다니던 말 한 마리가 빠져나가서 남의 농작물을 뜯어먹었다. 그러자 그 밭의 주인이 말을 붙잡아 버렸다. 말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제자 자공이 나서서 열심히 설득을 했지만 농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때 공자를 막 따라나서기 시작한 한 시골뜨기가 그 농부를 만나 말했다.
“그대가 동해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나 또한 서해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니 나의 말이 어찌 당신의 이삭을 뜯어 먹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자 그 시골 농부는 크게 공감하고, 기쁘게 말을 풀어서 넘겨주었다.
“아까 왔던 사람과는 달리 훌륭한 말솜씨를 지녔구려!” <여씨춘추>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말솜씨를 지닌 사람이다. 노나라를 침공하려는 강대국 사이를 조종하여 노나라를 전쟁에서 구해낸 탁월한 외교관이자 유세가였고, 사람들로부터 공자보다 더 뛰어난 인물일 수도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자공조차 농부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왜 실패했을까? 아마 자공의 말은 교양있는 사람들에게는 통하는 말일지 몰라도 농부들에게는 ‘외계어’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위의 사례에서 시골뜨기가 하는 말을 여러분은 이해가 가능한가? 아마 이 글을 읽은 분들 중 절반은 어리둥절 하셨을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을 풀어 보자면
“만약 내가 서해에서 농사를 짓고 당신이 동쪽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서로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연히 내 말이 당신의 이삭을 뜯어 먹을 일도 없지 않았겠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린 서로 만나게 되었고, 내 말이 당신의 이삭을 뜯어 먹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해석조차도 무디고 거칠다. 하지만 농부끼리는 찰떡같이 알아듣는 표현이란 말이다. 이처럼 서로의 눈높이에서 나누는 말 또한 말솜씨를 능가한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어떠한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마음과 상황에 맞추어 말을 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내가 할 말을 속으로 생각한 뒤 내 말을 하기 바쁜가?
상담 강의를 의뢰받으면서 니즈를 파악하다 보면 대부분 병원에서의 공통점이 보인다. 모든 병원에서 상담 시 직원들이 훈련 된 ‘할 말’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의 주목적은 상담의 성공이다. 상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환자를 설득시켜야 하지 않은가? 환자를 설득 시키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칼럼을 읽고 나서 당신의 병원 체어에 누워 보라.
그리고 제일 처음 어떤 느낌이 드는지 그 느낌을 상담실로 가지고 가라. 그 느낌으로 환자는 상담실에서 상담직원과 마주한다. 불안함, 초조, 떨림, 공포, 알 수 없음 등등의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느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것을 긍정적인 느낌으로 바꾸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긍정적으로 느낌을 바꿀 수 있을까?
위에서 알아 본 ‘눈높이에 맞는 대화’가 그것이다. 눈 높이에 맞추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을 잘 들어보며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그 사람이 하는 말투와 언어를 비슷하게 사용하려 노력해야 한다. 내가 아는 지식을 유창하게 뽐내려 해 봤자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면 ‘소 귀에 경 읽기’다.
그 상담은 결국 실패고 나는 업무를 성공하지 못한 것이 된다. 환자 한 분 한 분의 마음을 얻는 것이 커리어를 쌓는 초석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환자분 마음이 쌓일수록 우리 병원 매출이 쌓인다는 것도 결코 잊지 않길 바란다. 그런 선순환이 결국 직원들의 연봉 인상으로 이어지고 병원 규모의 확장, 원장님 브랜딩으로 이어져 지역사회에서 치과 입지가 굳건히 다져짐은 명실상부한 일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