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야구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테드 윌리엄스는 보통 ‘타격의 신’, ‘최후의 4할 타자’로 표현되는 레전드 중의 레전드 선수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쓴 타격이론서에서 선구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 자신의 통산 스트라이크존 77분할 타율 분석 그림이 매우 유명하다. 이른바 잘 칠 수 있는 Sweet Spot에서는 4할을 치지만, 약점인 인하이와 아웃로우에서는 2할대도 있다. 워렌 버핏이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 그림을 소장하고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버핏이 하고자하는 말도 선구안의 중요성, 즉 ‘잘하는 것을 기다리고 잘하는 것을 잘하자’로 요약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런 분석이 가능하도록 객관적으로 분류되고 수집된 데이터가 더 이채롭다. 사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불리는 야구이기에 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늘 논쟁의 대상이 되는 KBO의 스트라이크 존을 고려해봤을 때 평가 기준인 스트라이크 존의 질이 그야말로 메이저리그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을 것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것은 데이터 분석의 기본 전제다. 데이터의 전처리, 수집단계에서 기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 딱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 텍사스 명사수(Texas Sharpshooter)가 아닐까 한다. 총잡이가 한쪽 벽을 향해 총을 난사한 다음, 총알구멍이 많이 뚫린 곳에 과녁을 그려넣는 식의 오류를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라고 한다. 보통 심리학에서 많이 쓰이지만, 데이터 분석에서도 비슷하다. 난사된 총알 같이 엉망으로 수집되고 통제 안 된 데이터들을 뒤늦게 과녁을 그리듯 어떻게든 분석을 해보지만 그렇게 해서 나오는 어떤 결론도 실상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나는 치과의사를 하면서 임상을 기록하고 남기는 걸 나름 열심히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기록들을 엮어서 이른바 ‘임상 케이스’로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다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내가 테드 윌리엄스를 따라하려는 마이너리그 타자인지, 사회인 야구 수준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혹여나 텍사스 레인저스인 척하는 텍사스 명사수가 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치과를 옮기면서 홍보 목적 반, 케이스 정리 목적 반으로 SNS를 시작했다. SNS를 통해 치과계의 레전드들, 네임드들, 혹은 루키들의 케이스들을 접하다보면 끝없는 구도의 길처럼 임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SNS에서 임상케이스들을 보면 일단 화려하다. 최근 어린 세대는 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TikTok도 쓰지만, 현실적으로 임상케이스들은 정지된 사진 위주이기 때문에 주로 Facebook과 Instagram정도가 메인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SNS로써 특성의 차이는 치과 임상에서도 엇비슷하다. 페이스북이 좀 더 술자의 연령대도 높고, 글의 길이도 길고, 좀 더 진지하고 학문적인 성향이 있다. 반면에 인스타그램은 사진들 위주로 짧고 간결하지만 대신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임상 사진들을 보며 눈이 호강하는 이른바 ‘눈뽕’을 맞으려면 인스타그램을 추천한다. 끝내주는 전치부 보철, 감쪽같은 레진, 굽이굽이 물결치는 엔도 등등. 얼짱각도의 셀카사진처럼, 치아도 SNS용 사진은 기존의 학문적인 임상사진과도 차이가 있다. 치아에는 광이 나야하고, 색의 콘트라스트는 쨍하게 또렷한 느낌을 줘야하며, 심도를 얕게해 전치부 심미보철사진에서 구치부가 날아가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SNS의 게시글이 목적성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눈뽕에 취하기에 앞서서 걸러서 보는 것도 중요하다. SNS상에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들이 갖가지 옷이나 화장품 쇼핑몰을 하거나, 게시글에서 홍보인 듯 아닌 듯 각종 제품홍보를 하는 것은 임상사진에서도 똑같다. 치과 홍보나, 세미나, 제품, 혹은 네임드가 되고 싶은 루키 등등. 그러다보니 이들의 임상이 진짜배기인지 혹시나 텍사스 명사수는 아닌지 판단하는 게 요구된다.
임상적 기준을 가다듬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 국내 치과의사가 올린 신의 손이 해놓은 것 같은 레진 치료 사진에 치아 삭제량이 많은 거 아니냐는 외국 치의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잘 심은 임플란트 사진에 왜 살리지 않고 발치했냐는 댓글도 흔하다. 치과치료로 정신적 혹은 전신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한 외국 치의에게는 논쟁적이고 도발적인 댓글들이 주르륵 달린다. 의미 없는 댓글도 많고 이유 없는 시비에 가까운 악플도 많지만, 익명의 공간에서만 가능한 이런 가감없는 피드백은 오히려 대학이나 세미나에서는 보기 힘든 날 것 그대로의 팔딱거림이 있다.
치과를 옮기면서 어설프게나마 SNS를 시작해보니 알게 되는 큰 장점들이 있다. 어떤 임상이 ‘케이스’로 정리돼서 SNS에 올려질지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아직 모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임상을 케이스처럼 대하게 된다. 더 진지하고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은 기본이요, 추후 치과의사로부터의 태클을 염두에 두게 된다. 케이스 선정, 치료 계획, 치료 진행 등에서 가장 최신지견을 찾아보게 되고, 주변 동료들의 의견도 한 번 더 물어보게 된다. 그렇다. 마치 수련 받을 때 무엇을 하든 내 등 뒤에 교수님이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일반적으로는 일상이 침식된다고 표현하는 SNS의 역기능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임상사진에서는 SNS의 순기능으로 기능하는 게 아닐까 싶다. 테드 윌리엄스를 꿈꾸며 배트를, 아니 미러를 쥔 치과의사들을 위해 오늘도 인스타그램은 열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