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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즐겨 바보되고 기뻐 손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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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즐겨 바보되고 기뻐 손해보기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6.07.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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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교수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해지는 장기려 박사가 부산 청십자병원 원장이던 어느 날 가난한 입원 환자의 자녀에게 옷을 사주려고 자갈치 시장에 나갔단다.

“자, 싸요, 싸. 5천 원에 사 온 것을 3천 원에 팝니다. 자, 막 싸구려” 이렇게 외치는 상인에게 장 박사는 메리야스 옷을 하나 집어 들고 5천 원권 지폐를 주면서 “자, 5천 원 여기 있소. 받으시오. 5천 원에 물건을 3천 원에 밑지고 팔아서 되겠소?” 했다.

함께 나섰던 제자가 “선생님, 그 상인의 말을 진짜로 믿으세요?” 장 박사가 어린아이처럼 순진하다는 것을 잘 아는 제자였지만 남들은 물건값을 깎으려고 안달인데 깎지는 않을망정 3천 원 달라는 것을 구태여 5천 원 쥐여주고 사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러자 장 박사는 이렇게 말했단다. “그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난들 왜 모르겠나. 하지만 나라도 그렇게 해야 다음에 내가 갔을 때 그가 거짓말을 안 하지 않겠나.”
 

 

지난달에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세계근치학회가 있어서 가는 길에 전에서부터 하고 싶었던 사막캠핑 여행을 하고 왔다. 트럭을 타고 비포장길을 6200킬로나 가야 하는 험난한 여행이지만 아프리카 대지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갖은 말로 집사람을 구슬려 함께 갔다.

2주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만했는데, 3주째로 접어드니까 몸이 말로 할 수 없이 지쳐갔다. 그래도 우리가 한겨울에 히말라야 트레킹도 하고 미국 있을 때도 캠핑여행은 자주 했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하루에 길게는 600킬로의 비포장을 쿠션도 안 좋은 트럭을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었다.

우리 부부 빼고는 거의가 이삼십 대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네들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몸이 힘들다 보니 짜증도 나고 조그만 일에도 과민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여행을 같이해 봐야 됨됨이를 안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미국에서 온 호세라는 젊은이 하나는 늘 앞장서서 궂은 일을 한다. 요리사가 함께 다니지만 캠핑장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캠핑장에 도착하면 테이블 의자 펴는 것부터 식사 끝나면 설거지 도와주는 것, 간간히 트럭 청소하는 것 등등 같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호세라는 이 청년은 누가 하라는 것도 아닌데 묵묵히 한다.

알고 보니 이 청년, 조지타운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몇 년간 근무하다가 2학기부터는 MBA를 공부하기 위해 잠시 쉬고 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3개월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넉넉지도 않은 예산으로 몸으로 때워 가면서 해야 하는 여행이니 얼마나 힘은 들겠는가. 그의 자유로운 영혼도 부러웠지만 그의 마음 씀씀이가 정말 부러웠다.

남의 선행을 보면 늘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생각은 항상 잠깐이고, 일상에 들어가면 늘 나만의 패턴으로 돌아온다. 가끔씩 나가는 교회도 설교 시간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고말고…” 하는 것이 항상 끝이다. 다음날 월요일이 되면 행동이나 마음씀씀이는 전혀 변화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너무 멀리 바라 봐서 그런가. 먼 곳보다 바로 우리 옆에 있는 환자와 바로 함께 일하는 직원, 동료들에게 과연 한 번이라도 즐겨 바보 되고 기뻐 손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어느 목사님이 신학생 시절, 주일 아침에 보란 듯이 교회 문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 얄미워서 일부러 적선을 하지 않았던 것이 30년이 지난 후에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나도 상기해 보면서 가끔은 바보도 되고 손해도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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