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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교수의 공감] 불혹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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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교수의 공감] 불혹의 치과의사
  • 박기호 교수
  • 승인 2015.09.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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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경희대학교치과대학 교정학교실) 교수

 

흔히 우리는 마흔 살을 불혹의 나이라고 부른다.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논어』〈위정편(爲政篇)〉에 언급된 내용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나이 ‘마흔’은 과연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이 안정된 나이인가? 

 치과대학 6년이나 치전원 4년을 졸업하고, 3년의 군의관이나 공보의를 보내고, 전공의 과정을 하는 경우에 4년이 더 지나 전문의가 되고 나면 거의 30대 중반이 된다.

그리고 페이닥터를 한동안 하다가 마흔의 나이에는 대부분 개원의의 길을 걷게 된다. 40대 초반인 필자의 경우만 봐도 80명의 졸업동기 중에 교수의 길을 선택한 여섯 명과 종합병원이나 보건소 공직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페이닥터 몇몇을 제외하고 50명이 넘는 동기들이 개원의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보다 경기도 좋았고 치과 간의 경쟁이 덜 심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10년 전 필자가 보았던 불혹의 선배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안정되고 원하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면서 후배들 앞에서 당당했던 모습이 멋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나도 그렇게 되어 있겠지 하며 다들 부푼 꿈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부러움의 대상이자 잘 나가던 전문직들은 해가 갈수록 어려움의 굴레로 들어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환자는 줄어들고 갈수록 까칠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개원한 지 오래되지 않은 불혹의 치과의사들은 요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예전보다 이른 나이에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오십견을 비롯한 각종 통증들에 시달리면서 다른 치과의사들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주말마다 각종 치과 연수회나 경영 관련 연수회에 뛰어다니는 것이 오늘날 불혹의 치과의사들의 모습이다. 필자 동기들 중에 개원의로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을 이룬

친구는 열 명 남짓인 것 같다. 교수를 비롯한 공직에 몸담은 친구들도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연구, 논문의 압박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며 진료 시간뿐만 아니라 저녁 시간도 반납하고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


이런 주위 환경에 의해 불혹의 나이에도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고 안정되지 못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치과계에서 우리 세대의 역할은 너무나 클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스물이 갓 넘은 똑똑하고 꿈 많은 후배들이 치과대학의 길로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힘든 얘기만 하는 것보다는 이들에게 당당한 롤모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만 과거에는 경제적인 부분 위주로 선배의 당당함을 보였다면 이제는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인생을 개척하거나 즐기는 모습을 통해 선배의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동문들 중에 전문 번역가나 가수, 마술사 등으로 인생을 즐기는 치과의사들도 있고 필자의 지도 동아리인 통기타 모임의 OB들도 졸업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지속적인 훈련으로 학생들보다 훨씬 뛰어난 통기타 실력을 보이며 당당한 모습으로 후배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앞으로의 치과계의 경영환경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도 있고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하는 환경 속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우리 세대를 보고 있는 후배 세대들에게도 좋지 않다.

향후 치과계 구성원들 모두의 노력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치과계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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