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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에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참을 수 없는 차남(次男)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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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에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참을 수 없는 차남(次男)의 가벼움
  • 차현인 원장
  • 승인 2015.03.12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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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인(여의도 백상치과) 원장

 

내가 결혼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물론 든든한(?) 반려자를 맞이한 것이었겠지만 또 하나 기뻤던 것은 나를 끈덕지게 따라다녔던 오래된 호적(戶籍)과의 결별이었다.

그 중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나의 본적 란이었는데, 주소가 기재되어 있어야할 칸에 ‘불상번지(不詳番地)’라고 되어 있었고, 내 인생초반 29년 동안에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제출하는 모든 서식란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써넣으면서 살아왔다.

이렇듯 전무후무한 ‘괴짜’ 본적이 생긴 유래는, 북에 고향을 둔 아버지가 남한에서 본적을 다시 기재할 때 술에 만취한 채로 동사무소 직원 앞에서 횡설수설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후일담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나에겐 그 기록이 마치 ‘노예문서’라도 되듯이 꿈에서라도 지우고 싶은 혐오 스펙이었다.

대학생 정도의 머리가 되어서는 그 ‘불(不)’자가 싫어서 이와 뜻이 같으면서 어감이 다소 부드러운 ‘미(未)’자로 바꿔서 ‘미상번지’로 슬쩍 바꿔 적을 때도 있었다.

그런 호적을 내가 장남(長男)이 아니라 차남(次男)이라는 선천적 지위(?)와 결혼(結婚)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마침내 지울 수 있었고, 당시 거주지였던 ‘서울 우이동’으로 단박에 뒤바꿀 수 있었으니 그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죽어라하고 공부에 매달린 것도, 우리 가정의 불우함이 너무나 끔찍해서 그 불우하고 창피한 가문의 직계(直系)로부터 훌훌 벗어나 나만의 새로운 방계(傍系)를 꾸리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힘입은 바가 큰 것 같다.

불상번지나 미상번지 따위가 짓누르던 가엾은 인생을 ‘내가 성인이 되면 절대 살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이, 내 야망과 실천의 멈추지 않은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차남’이라는 것이 비단 나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훗날 아내에게 들은 바로는 그녀가 나를 결혼상대자로 최종 결심할 때 내가 ‘장남이 아니고 차남’이라는 것이 큰 작용을 했다고 한다.

“그럼, 내가 차남이 아니고 장남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건데?”하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능청스럽게도 아내는 “그렇다면 파토지 뭐! 당신은 더 예쁜 여자 만나서 엄청 행복했을 텐데…안됐다!”라고 대답했다.

“……”

2015년 내 나이 쉰 둘.

이번 설에도 고향집은 형님네 자손(조카 넷, 조카 며느리 둘, 조카 손주 넷)으로 북적북적 댔고, 나는 용기를 한껏 내어 어머니 앞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어머니, 저 이제 추석 때는 고향에 오지 않을께요. 저는 여태껏 집안을 위해, 어머니를 위해, 조카들을 위해 경제적으로 모든 부담을 지어왔잖아요. 또 저 자신이 일 년 내내 좁은 병원에 갇혀서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불쌍해요. 게다가 저는 둘째잖아요. 이제 설날 때만 내려올께요. 추석같이 좋은 계절에는 저도 더 늙고 힘없어지기 전에 여기저기 못가본 데 훨훨 다녀보고 싶어요.”

어머니는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잠시 얼굴빛이 어두워지셨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해주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어머니, 앞으로 제 자식에게도 설 명절만 지키고 추석 때는 오지 말라고 할 거예요. 이젠 제사라는 것도 없고, 농사짓던 시절의 추석 명절이 현대에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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