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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치과 급여화 확대, 비현실적 급여수가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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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치과 급여화 확대, 비현실적 급여수가가 문제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3.06.07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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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치료를 할 때 ‘제 값을 받지도 못하는데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보험수가 수준에 맞춰 적당히 하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가끔 들을 때가 있다. 물론 그 분들의 무심한 엔도가 내 공들인 엔도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작 공을 들이든 적당히 하든 간에 현 보험수가 수준에 맞춰서 엔도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러버댐을 걸고, 날이 꺾이거나 풀리면 파일을 버리고, 나이타이는 횟수를 세어가며 사용하는 교과서적인 기본을 지키기만 해도 그 비용이 보험수가는 이미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다.
왜 A치료의 비용을 B치료에서 보상받아야 하는지는 사실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환자에게 이해시키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환자에게는 대놓고 직접 말하지는 못하지만, 이 땅의 대부분의 치과에서 보철 가격에 엔도 비용이 포함된 것으로 셈하여 계산을 맞춘다. 그래도 그만큼 엔도에 공을 쏟으면 돈에 연연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의술을 펼치노라고 우리끼리는 서로 알아주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은가.
보철하면 엔도는 기본이요 공짜였던 과거 분위기에서 요즘은 엔도의 본인부담금 정도는 받으니 그래도 좀 나아지기는 했다. 비록 여전히 터무니없이 적기는 해도.
각각의 치료가 개별적으로는 진행되기 어려운 현재의 수가 체계는 가끔 요상한 문제를 낳기도 한다. 어제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외국인 여자 환자가 엔도는 나한테서 받고 크라운은 25만원 받는 서울 모 치과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아예 안보면 몰라도 엔도만 해주는 일은 안그래도 직업 수명이 짧은 치의의 몸도 버리고 본전도 못 찾는 바보짓이 아닌가. 아무리 의료인이라도 생업을 위해 종사하는 것이고 부양할 가족이 있는데 매 순간 희생을 하고 이익에 초연하기를 강요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내 공을 남이 거져 가져가는 상황이니 말이다.  
점잖게 돌려보내려고 하다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이른바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에 진료봉사를 가던 선배들이 떠올라, 나는 고작 이 한명 엔도도 못 해줄까 싶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혹시나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을 부끄럽게 만들까 걱정이 들었다. 아직 치과 경영에 능숙하지 못해서겠지만, 적정선의 엔도를 하면서 25만원으로 크라운을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전혀 모르겠다. 아마 어디선가는 비용 절감의 이유가 있을 터이고, 나는 그 치과에서의 엔도가 몹시 불안해졌다. 나중에 이름 모를 키르기스스탄의 한 치의가 그 엔도를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가끔 외국인 환자를 보다보면, 그 환자의 구강 상태로 그 나라 치의들의 수준을 가늠하게 되고, 나아가 그 나라 자체를 가늠하게 된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받은 치료도 가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상관성에 대해 다소 조심스럽기는 하다. 이를테면 일본 쪽에서는 메탈 인레이나 메탈 크라운같이 보험되는 치료를 많이 하는 것처럼 그 나라의 전반적인 흐름과 의료제도의 특성을 유추해 볼 기회가 된다. 그럼 우리나라의 치료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치과의사가 행한 치료들이 그 치과의사를 대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은 치과치료가 우리 치과계를 대변한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의료계, 우리나라의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나는 저 멀리 키르기스스탄에 있을 치의에게 우리나라의 엔도의 급여수가가 형편없고 비보험진료는 덤핑치느라 이 환자는 이렇게 치료받을 수밖에 없었노라고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결국 그 환자에게 엔도는 25만원 짜리 그 치과에 가서 받으시는 게 어떠냐고 말을 건네려다 차마 말을 못하고 그냥 내가 해버렸다.
이번 건보공단과의 수가협상에서 치협이 2.7% 인상이라는 납득할만한 성과를 내었지만 개원가의 시름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최근 흐름으로는 치과 전반으로 급여화되는 치료 영역이 넓어지는 분위기다.
스케일링의 급여화는 이미 채 한달도 안 남았고, 비보험 치료의 큰 축이었던 임플란트까지 내년에 급여화될 전망이다. 현실적, 재정적 이유로 치과의 어디까지가 급여화될지 예측이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비보험 치료의 영역이 좁아질수록 비현실적인 급여 수가를 비보험 수가에서 충당하기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대변되는 치과의사의 사명감과 자존감도 말로는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뭐든 기댈 구석이 있어야 그런 의리도 낭만도 가능한 법이다.

 

연세루트치과 이수형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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