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경(齒鏡), 내 삶을 비춰준 거울
From Invasive to Conservative- 더 적은 것을 향한 여정
오알프치과 오경아 원장


1. From Invasive to Conservative - 더 적은 것을 향한 여정
“저는 경희대 치과대학 96학번 오경아입니다.”
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 넘었는데 학번을 이야기하며 글을 시작하는 것은 24학번 신입생 딸에게 주어진 자유를, 96학번이었던 나도 용기내어 같이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순간이 자유다.’ 라고 내 삶을 정의내리는 순간, ‘자유’가 펼쳐지기도 하니까.
치과대학을 처음 들어갔던 때나 치과의사가 처음 되었던 때 그리고 개원을 처음 하던 때. 그 어느 때도 ‘이 길이 내 길이구나’ 확신이 없어 두려움이 앞섰고 그래서 떨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매일 부족함을 느꼈다.
임상 경험이 20년 쌓인 지금은 어떨까?

삶의 굴곡을 지나고 나면 한 번씩 바뀌곤 하는 MBTI이지만 치과의사 중에 많지 않다는 INFJ의 기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환자가 원하는 것을 만족시키고 환자를 얼만큼 건강하게 해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떨리고 항상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사명감을 갖게 된 이유에는 치과의사만이 환자에게 줄 수 있는 ‘Memento mori’의 상징과 같은 무언가가 있어서는 아닐지.
어릴 적 치과에 대한 기억이 없었기에 운명적으로 우연히 들어간 치과대학 졸업 이후, 드러난 삶 속에서는 치과의사로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매일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20여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서야 치과의사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새로운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자유’의 의미는 내가 못한 걸 못했다, 잘한 걸 잘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이 고해성사와 같은 용기를 통해 적어도 면허번호 20,000번 이후의 치과의사들이 나와 같은 실패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어디선가에서 떠돌고 있을지 모를 내가 잘못 치료한 환자분들께 죄송한 마음 그리고 나의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실 수많은 치과 선배님들께 ‘제 환자분들 잘 치료해 주세요’라고 부탁드리는 마음을 담아 그간 20여년 간 치과의사로서의 나의 실패담, 성공담을 찬찬히 풀어보고자 한다.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아치과를 2번이나 지원했지만 낙방한 이후 GP가 되어 개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에 70명씩 환자를 보던 치과, 직원들과 점심에 삼계탕을 끓여 먹기도 했던 출산 대진 치과, 막 큰 규모로 개원한 치과 그리고 동네에 터줏대감처럼 자리잡은 선배 치과 등 이러저러한 치과를 거쳐 임플란트를 배우기 위해 현재 국내 5대 임플란트 순위 내에 드는 원장님 병원에 페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임플란트를 몇 개 심어보지도 않았던 결혼 1년차에 당시 틀니를 하고 계셨던 시아버님께서 임플란트를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겁도 없이 full mouth rehabilitation을 해드렸다. 분명 그 당시 아버님께서는 며느리가 임플란트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어 주셨음에 참으로 감사하다.

31세, 여자 치과의사, 왜소한 체격. ‘심미’를 컨셉으로 잡고 개원함이 낫다고 판단해 요즘 다시 여러 이름을 가진 ‘최소삭제’ 라미네이트가 대두되어 유행하듯 2007년 압구정에서 미백과 라미네이트 치료를 컨셉으로 치과를 개원했다.
그 당시 하루에도 여러 명의 치아를 삭제한 후 라미네이트와 올세라믹을 붙이는 일을 반복했다.
얼굴 성형도 시대의 유행을 타듯 소위 치아성형 분야도 유행을 탔기에 보다 하얀 치아, 균일하고 가지런해 보이는 치아 등 환자들이 원하는 대로 소원을 들어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소원 아닌 소원을 들어주었다.

치아를 연예인처럼 밝고 환하게 하기 위한 라미네이트, 삐뚠 치아에 라미네이트, 튀어나온 치아에도 라미네이트, 치아 사이에 틈이 있어도 라미네이트. 환자분들은 광고에 ‘무삭제 라미네이트’라고 쓰여져 있고 가지런한 전후 사진을 비교하면 나의 치아도 모두 ‘무삭제 라미네이트’로 치료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지곤 하는 것 같았다.
라미네이트와 올세라믹의 차이는 검색만 해도 나오고 상대적 돌출감을 줄이기 위해 라미네이트의 치료 개수를 늘리지 않는 이상 치아 삭제는 필수불가결함이 상식선에서 당연한데 말이다.
개원 후 강남 개원가에서 흔히 있는 지역 상권 및 각종 CEO 행사 및 모임, 온라인 광고, 대형 소속사 연예인들 치료, 주말마다 있는 세미나 등 3~4년을 정신없이 보냈다.
매출은 수직 상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늘고 있어 안정기에 접어들 것 같았는데 뭔가가 불안했다. 이 불안은 뭐지?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불쑥불쑥 걸려오는 ‘라미네이트가 깨졌어요’ 등의 전화에 스트레스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음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