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원장의 오만과 편견] 눈먼 자들의 도시
김기영(마이다스치과) 원장
영국의 ‘웰즈’와 포르투갈의 ‘사라마구’는 각각 1911년과 1995년에 ‘The Country of the Blind, The Blindness’를 발표했다.
특히 ‘사라마구’는 1998년 포르투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되는데,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상 선정 이유에 대해 “상상력과 아이러니가 풍부한 이야기로 우리의 눈을 속이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여 온 작가”라고 밝혔다.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갑작스러운 전염병 성격의 실명으로 사회가 위기와 혼란에 빠지는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의 실명이란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님이 된 안과 의사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나(의사의 아내)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사라마구’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이란 표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눈이 있는데도 현실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며 야만적인 폭력과 비인간성을 나타내는 사회를 향해 “제발 눈이 있으면 똑바로 쳐다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똑바로 쳐다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똑바로 쳐다 볼 수 있을까?
개인은 사회와 직업으로서 연결 고리를 갖는다.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수를 얻으며, 생활을 영위하고 때로는 소외되고 때로는 위안을 얻는다. 대부분의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며 그것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직업인 ‘치과의사’의 업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치과의사는 자연과학의 한 분야인 치의학을 다루는 의료인이며 전문가이다. 자연과학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최소한 치의학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과학자의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대 치의학에서 그 내용을 다룰 때 그 방법론으로서 근거 중심 치의학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최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질문을 하고 그것의 근거를 찾으며 비판적으로 평가한 후 나의 상황에서 적용할만하다면 적용해보고 그것의 결과를 재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이것은 지식의 습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그 의미가 중요하다.
한 명의 치과의사는 제한된 경험과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다른 의료인들이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해 놓은 대규모 연구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면 자신의 임상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방식이 아니면 새로운 지식이나 패러다임, 어떤 권위 있는 교수의 주장, 신약 개발, 의료 신기술, 의료 장비, 새로운 가이드라인 등등 새로운 것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불가능할 수 있다.
자연 과학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단순히 ‘감정’적인 범위를 넘어서서 어떠한 태도를 가졌을 때 결국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결과를 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를 갖는 것은 ‘심성이 착하다’라든지 ‘양심적이다’ 라든지 감성적, 인격적, 도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과학을 대하는 태도 또한 과학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을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의료인들은 특히 이러한 과학적인 태도에 대해 엄격해야 하고 스스로 ‘오만’과 ‘편견’ 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과학자의 마음가짐은 대의명분으로 위장한 말뿐인 선동꾼이 대중을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고 정의로운 척하며 도덕을 논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왜곡해 전파하고 국민들의 의료인에 대한 불신과 분노의 감정을 이용해 결국 경제적 이익까지 취하며 견해가 다른 의료인의 얼굴에 빨간 칠을 해가면서 적폐 세력으로 몰며 정치적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자들도 문제이지만, 국가의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면허증이 보장하는 권위를 이용해 스스로 눈이 이미 멀어서는 보지 않는 것이 더 좋다면서 대중들의 눈을 멀게 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충치를 진단함에 있어서 육안 검사와 함께 방사선 사진을 언제, 왜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가이드라인과 FDI 백서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이제 국가 구강검진에 파노라마 방사선 사진 검사가 포함될 날이 머지않았다. 방사선 사진의 이용을 놓고 99%의 치과의사와 100%의 환자들이 모르는 영업 비밀이며, 이를 치과의사들이 과잉 진료를 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한 치과의사의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의 건강에 중요한 책임이 있는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이러한 심각하게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치과의사들의 명예와 신뢰를 훼손시키는 주장에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전문가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비겁한 이익집단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의 후배 치과의사들은 먼 훗날 이 사건을 기억하며 부끄러워 할 것임이 분명하다.
보건복지부 또한 이렇게 의료인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행위에 대해 법률의 유권해석을 통해 단호하고 철저하게 대처해 더 이상 두 눈 멀쩡하게 뜨며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의 눈이 멀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눈이 있으면 제발 똑바로 쳐다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