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늙는다는 것
조선경(예인치과의원) 원장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체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을 ‘노화’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노년기에 나타나는 노인성 변화를 말하며 소모색소의 침착 소지방구의 축적, 세포의 용적감소, 핵의 위축이 일어나고, 화학적으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화합물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노화의 원인은 신체적 나이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고 활성산소가 원인이라는 이론이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활성산소는 호흡과정에서 몸속으로 들어간 산소가 산화 과정에 이용되면서 여러 대사과정에서 생성돼 생체조직을 공격하고 세포를 손상시키는 산화력이 강한 산소를 말한다. 현대인의 암, 동맥경화증, 당뇨병, 뇌졸중, 심근경색증, 간염, 신장염, 아토피, 파킨슨병, 자외선과 방사선에 의한 질병중 약 90%가 활성산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몸속의 활성산소를 없애야 하며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물인 비타민E, 비타민 C, 요산, 빌리루빈, 글루타티온, 카로틴 등을 섭취해야 한다.
요즈음 노화의 억제와 무병장수에는 인체를 구성하는 DNA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활발하다. DNA는 하루에도 수만 번씩 공격을 받지만 복원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서 환경독소, 라이프스타일 ,산화, 염증, 당화현상 등으로 DNA가 파괴되기도 하지만 손상된 부위의 대체 하며 스스로를 보호한다. 40세가 넘으면 인체의 메커니즘이 약화돼서 모든 손상을 복원시키지 못하고 DNA의 염기서열에 문제가 생기면서 질병과 노화로 연결된다.
염색체 복제 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DNA 끝에 붙은 모자모양의 텔로미어가 있는데 50~60회 복제 시 길이가 점차 짧아지고 보호기능이 사라지게 되면서 노화가 일어난다. DNA에 가해지는 다양한 공격과 지속적인 텔로미어 길이의 급격한 감소 그리고 세포의 재생과 유지에 필수적인 줄기세포수의 감소는 만성질환이나 노화를 일으킨다. 텔로머리아제라는 효소가 텔로미어를 만드는데 이 효소가 없으면 세포분열때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져 염색체가 손상되고 그 결과 세포가 죽게 되고 인간과 동물의 수명이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요즘에는 노화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공중파로도 심심찮게 방송되면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이야기가 되고 있다. 노화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의 과정이지만 노화방지에 관한 연구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젊음을 유지하며 영생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노화해서 죽는 건 정한 이치라고 하지만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어르신들의 말이 거짓말인 것을 방증하듯 병중에 계신 분조차 정신 온전한 분들은 모두 오래 살고 싶어 한다.
2달이 지나면 100세가 되시는 시어머님은 본태성 고혈압을 앓고 계시지만 현대의학의 힘으로 일상생활에는 별다른 지장 없으시고 귀가 안 들려 불편하다며 보청기를 하면 좋겠다는 투정으로 하루를 보내신다. 4~5년 전만 해도 간단한 집안일을 하시며 손주들 저녁도 차려주셨는데 많이 마르시고 잦은 짜증에 나는 같이 있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지만 볼 때마다 예전에 건강한 어머님 모습이 아니셔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어머님은 매일 아침마다 2시간가량 스트레칭하시고 러닝머신에서 걷기운동을 하시며 정신이 온전하셔서 대화도 가능하고 노인정은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걸어가신다.
언젠가 TV에서 시골에 사시는 노인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방송을 본 적이 있다. 어떤 할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끼 식사를 위해서 밭에서 호박 가지를 따시고 부엌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이었고 어떤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방에서 할 일 없이 누워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왜 방에만 계시냐는 PD 말에 기운이 없어 밖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시청하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아팠는데 이런 분들에게 늙지 않는 방법이 있다고 한들 그네들이 선 듯 노화를 뒤로 하고 영생을 택할까 의심이 된다.
인생이란 보람을 느끼며 할 일이 있을 때 가치가 있지 단순히 오래 산다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열심히 일하시고 잔병치레 한번 없으시다가 교통사고로 2주 만에 생을 달리하셔서 아쉬움에 하늘이 무너질 듯 가슴이 아팠지만, 마지막에는 대소변 받아내며 7년간 자리를 보전하셨던 엄마보다는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가셨다고 생각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2014년 기준)로 젊은 사람들이 줄고 있는 우리나라에 노화방지의 열풍이 불며 더욱 완만한 역피라미드를 보이는 인구분포가 내게는 그리 좋게 생각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간밤에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보인다며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어머님도 몸에 좋다는 영양제며 TV에서 좋다는 칡즙, 아마씨, 이름도 어려운 햄프씨드를 먹고 싶어하시는 심정이 이제는 나도 이해가 된다. 늙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아이들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마트에 가면 건강식품 코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늙어서 나조차도 잊어버리고 남들 불편하게 하면서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어른들 말씀처럼 자손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면서 건강하게 늙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여성호르몬이 칡에 40배나 된다는 아마씨를 한 수저 입에 넣고 건강에 관한 프로그램에 몰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