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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나는 '비급여 가격공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쪽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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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나는 '비급여 가격공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쪽을 택하겠다
  • 이수형 원장
  • 승인 2022.09.01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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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 주인공인 리부트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악당이 집어던진 유조차를 슈퍼맨이 훌쩍 뛰어넘어 피한 것만으로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뜨거웠다. 슈퍼맨의 능력을 고려하면 지구한바퀴를 돌고 와서도 유조차를 유모차 다루듯 받아낼 수 있는데 왜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혼자 뛰어넘어서 피하는가. 슈퍼맨의 캐릭터가 갖는 고유한 내러티브를 해친다는 이야기다. 

이걸 가상의 슈퍼맨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타이밍을 아슬아슬하게 잘 맞출수록 보상을 더 받도록 게임을 디자인했다고 가정해보자. 또는 불살不殺의 배트맨이 악당을 도륙한 숫자에 따라 경험치가 쌓여 강해지는 게임 디자인도 가정해볼 수 있겠다. 짜잔. ‘루도내러티브 부조화’의 탄생이다.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게임판에서 쓰이는 용어가 있다. ‘논다’는 의미의 Ludo- 와 내러티브의 합성어다. 가만히 감상하는 문화 컨텐츠인 영화나 음악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되어 직접 플레이함으로써 경험하는 체험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에 따라 영화와 달리 게임에서는 내러티브가 두가지가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먼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접하게되는 게임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갖는 내러티브가 있다. 그리고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 방식과 보상를 통해 플레이어가 체험하게 되는 내러티브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게임시장이 영화와 음악을 합친 것보다도 두 배 이상 커지면서 게임판에서도 여러가지 성공 공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움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비디오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그 게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행동’과 모순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철학적으로 심오했던 ‘바이오쇼크’라는 게임의 비평에서였다. 가상의 해저도시에서, 다른 모든 윤리적 가치보다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하며 그 도시를 자본과 권력과 약물로 지배하는 최종보스를 물리치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에게는 성장을 위해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강해지기 위한 보상을 얻을 것인가, 보상을 버리고 인간성을 추구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분기점이 존재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플레이는 이어지지만, 보상을 우선하는 전자를 선택할 경우 플레이상으로는 최종보스의 이념에 동조해놓고서 스토리상으로는 왜 대립하는가라는 내러티브의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게임 특유의 호쾌한 액션 추구 때문에 자주 발생하는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는 보통은 이런 식이다. 주인공이 스토리상으로는 이웃집 청년처럼 어수룩하고 가끔은 유머러스한 매력있는 백인의 모험가지만, 보물을 찾아 탐험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을 총으로 쏴죽이는 살인마가 된다든가.

고고학을 전공한 호리호리한 20대 여성이 난파되어 도착한 섬에서 시작한 첫 모험에서 수백명의 병사들을 죽이면서 공포에 질린 병사에게서 ‘저 여자가 우릴 모두 죽일거야’라는 대사를 이끌어낸다든가. 

게임 안에서 흘러가는 스토리 상의 내러티브와, 플레이어의 경험이 지나치게 괴리될 경우 많은 플레이어들이 몰입의 경험을 망치게 되고 이 부조화에 대한 대응으로 중도에 게임을 포기하거나 스토리상의 내러티브를 아예 스킵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요즘 게임 개발사들은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의 내러티브를 일치시키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쓴다. 갱단으로 활동하면서 지른 죄값을 게임 후반부에 치르게 하며 그 정도에 따라 엔딩을 달리 한다거나, 괴물들을 하나도 죽이지 않는 불살의 플레이를 하면 공존과 화합의 진엔딩이 나온다거나 하는 식이다. 

게임 이야기가 너무 길었을까. 의료계를 바라볼 때, 시스템을 정하는 정부를 게임 개발자에 놓고, 그 시스템 안에서 놀아나는 의료인들을 플레이어에 비유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 싶다.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 보건의료 판을 설계하는 정부가 어떤 의료인 상(像)을 그리는 것인지와 실제 어떤 의료인으로써 플레이하게 하는지 사이의 부조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의 ‘비급여 가격공개’ 관련 이슈는 절망적인 수준이다. 최대한 덜 빼고 살려보는 보존적 치료계획을 최대한 좋은 재료와 치료법으로 행한다라는 치과의사로서의 내러티브와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는 정책이다.

전국 모든 의료인들에게 ‘너희의 평가기준은 일단 가격이다’라며 의료인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게임의 룰을 정한거라 심각한 내러티브의 부조화가 발생했다. 환자에게 ‘병원의 평가기준은 일단 가격이다’라는 정부 차원의 메시지라는 점에서는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차라리 MB2근관이나 재신경치료, 기타 치아를 살리기 위한 여러 고난이도 술식의 빈도나 성공률이 기준이라면 설령 강제를 해도 이해를 하겠다. 또는 어차피 이미 수요공급이 맞아서 가격경쟁과 시장논리로 돌아가는 강남역 같은 곳에 일종의 의료특화지구를 설정해서 그 안에서만 비급여 가격공개를 적용한다고 하면 머리로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국의 의료인들이 전국민을 상대로 가격을 오픈해서 저렴한 치료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게 대한민국을 위해서 어떠한 이점이 있는지는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비급여 가격공개’ 이슈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의 보여준 실제 행동에 근거하여 정부가 생각하는 치과의사 직업의 내러티브를 추측하고 그 두 내러티브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정부가 보여준 행동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그들의 치과의사 상(像)은 내가 치과의사로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수준의 너무 괴롭고 절망적인 것이라 나는 외면하고자 한다. 나는 ‘비급여 가격공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쪽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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