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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구강악안면외과 7] 구강악안면외과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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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구강악안면외과 7] 구강악안면외과의 역사 1
  • 이용권 원장
  • 승인 2022.03.31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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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와 청주서울좋은치과 이용권 원장의 협력으로, 만화로 보는 구강악안면외과를 매주 소개합니다.


청주서울좋은치과 이용권 임플란트센터장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악안면외과학 교실 수련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악안면외과 석사,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 취득
현재 청주서울좋은치과 임플란트센터장

 

구강악안면외과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고대 그리스 시절 히포크라테스가 턱이 빠진 사람의 턱을 제자리에 넣어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것도 어찌보면 구강악안면외과 영역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시절에는 유럽의 프랑스에서 피에르 포샤르는 의사가 처음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구강악안면영역을 다루었습니다. 여러가지 발치기구를 발명하였고 체계적인 술식을 적은 논문<치과외과의>을 처음 발간하여 근대치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웁니다.

근대 치과대학이 세워진 것은 1839년 미국의 볼티모어치과대학입니다. 예전에 주먹구구식으로 배우던 발치술이나 외과적술식들을 이제는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게 된 것입니다. 

대학에서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쳤지만, 아직까지 환자들에게 외과술식을 받는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마취제의 발견이 없을 때에는 뒤통수를 가격해서 기절시킨 뒤 치아발치를 하거나 술을 많이 먹여서 기억을 못하게 하고,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손발을 묶어서 치아를 발치하였습니다. 

몸의 일부를 남기거나 보존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빠른 시간 내에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술식으로 자리잡았고, 가장 빨리 고통을 줄이면서 시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명의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마취제의 발견 이전에 산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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