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58 (금)
[치과의사의 영화관람] 위협적이지 않은 미래기술이 있다면, 영화 ‘HER’
상태바
[치과의사의 영화관람] 위협적이지 않은 미래기술이 있다면, 영화 ‘HER’
  • 김종진 원장
  • 승인 2021.06.30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생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보는 사람의 인생과 상황에 따라 꼽는 작품들은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많은 이들이 그렇게 칭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중 2014년 개봉한 미국 영화이자 <조커>로 유명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은 <HER>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치과에도 디지털 바람이 부는 시대이기 때문일까요? 치과를 운영하는 저에게는 인공지능(AI)과의 로맨스를 다룬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인공지능을 차갑게 그렸던 디스토피아적 기존 SF물과 달리, <HER>는 AI와의 교감을 포스터의 색감만큼이나 아주 서정적으로 다룬 독특한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영화 HER 포스터, 포스터가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이혼을 앞둔 쓸쓸하고 내성적인 한 남자(테오도르)는 어느 날 말동무가 될 한 여자(사만다)를 소개받습니다. 그녀의 정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입니다. 남자의 휴대폰을 통해 연결되는 그녀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함께 하며 곧 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듭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며 결혼까지 했던(별거중인) 캐서린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사만다는 심리적으로 배워가고 성장하는 속도가 엄청납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의 말을 빌리자면, 주인공이 사랑의 상대를 객체(HER)에서 주체(SHE)로 인정하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육체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후에 사만다는 진화를 위해 스스로 떠나지만, 관객들은 저마다 ‘완성형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지요.    

공허했던 한 남자를 채워준 사만다, 이 놀라운 AI 운영체제의 존재를 그대로 들고 제가 몸담고 있는 의료계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AI는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어 고도화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고관여 분야는 단연 의료계가 아닐까 합니다. ‘Digital Care’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건강 수준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다는 이상적 목표 때문입니다.

이미 AI 솔루션은 진단, 예측, 치료 등의 목적으로 영상의학, 병리학, 피부과 등의 넓은 영역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은 앞으로도 침범하기 어렵겠지만,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치과 역시 마찬가지로 AI의 적용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환자의 3D 스캐닝 데이터를 기반으로 빠른 시간 안에 보철물을 제작하거나, 맞춤형 교정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파노라마 엑스레이, 인상채득 모델을 분석해 치료가 필요한 치아를 미리 찾아내고, 임플란트 식립 위치를 제시하거나 수술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고 의사에게 데이터 기반의 조언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환자의 구강 정보를 디지털화해 최적화된 진료를 적용하는 ‘디지털 덴티스트리(Digital Dentistry)’의 영역입니다. 이미 국내 굴지의 치과 관련 기업들이 글로벌 최고 수준의 디지털 덴티스트리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환자 지향적이면서도 치과의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완성형 워크플로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미 발병한 환자에게 더욱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기존 환자의 치료 데이터를 통해 추후 질환을 예측하는 것 또한 필수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한창 발전하고 있는 AI 적용분야 이외에도 지금보다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더 ‘예방진료’에 가까운 것입니다.

‘발병 전에’ 할 수 있는 치과의 영역이 디지털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것이 AI와 결합해 고도로 지능적인 형태로 정확해질 수 있다면 어떨까요? 4년 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40년 후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국민의 43.9%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에서, 치과 예방진료 영역의 중요성은 두 말 할 것 없이 높습니다. 발치를 요하는 심각한 구강질환, 또 심장 질환이나 치매와 같은 전신의 병력을 야기하는 치주질환의 진행을 철저히 예방하고, 이미 발병했다면 초기에 발견해 비교적 간단한 시술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질수록 건강한 치아를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치아의 보존과 구강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치과의 예방진료 영역이 국내에서 더욱 두텁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제도적/인식적 개선이 동반되어야 합니다만, 치과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진행할 수 있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치주낭 측정(Periodontal Probing)입니다. 스케일링처럼 정기적인 전악 치주탐침만으로도 눈에 보이지 않던 치주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치은염이나 치주염이 진행되었다면, 적절한 조치를 빠르게 취해 추가 진행을 막고 치료되도록 합니다. 연 1회 스케일링만으로 완벽하게 예방이 어려웠던 부분이나, 딥 스케일링이 필요한 치아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방진료의 시작점에서 치주낭 측정이 일반화되고 이 과정에도 디지털과 AI가 더해진다면, 개별 환자의 정확한 치주상태가 데이터화될 뿐 아니라 누적 데이터의 분석과 예측을 통해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맞춤형 구강건강관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미 진행중인 CAD/CAM, 3D 프린터, 디지털 임플란트 등으로 대변되는 ‘Digital Dentistry’ 영역과는 또 다른 부분이지요. 

다음 칼럼에서는 치주낭 측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Periodontal Charting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물론 여기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 가능해지는 결과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자 합니다.  

#Now we know how. 
공교롭게도 사만다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습니다. 한 남자에게 인생 최고의 로맨스를 깨닫게 한 AI는 더 이상 차갑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더 똑똑해졌을 뿐이지요. 우리는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할을 늘 가슴에 품고, 변화를 더욱 발전적인 방법으로 흡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치과계에도 AI가 그렇게 따뜻한 색으로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