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선인들이 했던 얘기들이 하나도 틀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비록 매우 좋지 않은 시력이지만 그나마 안경이라도 쓰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게 되는지. 그런데 이것으로는 좀 부족한게 있다. 틀림없이.
사족을 달자면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 이라는 말을 여기에 더하고 싶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평론을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정당한 관람료를 냈으므로 감상할 권리가 있기에 순수한 관람객의 입장으로도 얼마든지 영화를 속된 표현으로 까댈 수 있다.
여기서는 우리가 영화를 저 정도나마 만들 수 있고 없고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행하고 있는 임상에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관람자의 입장에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관람객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또한 제작자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임상에서 순수한 관람객의 입장으로만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름하여 진료평론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행(行)은 견(見) 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5월 7일에서 9일까지 필라델피아에서의 Roth Study Club International(이하 RSCI) Meeting은 임상의로서 관람객과 제작자의 입장으로 동시에 참가해야 하는 모임이었다.
대규모 학회에서는 우리가 본인의 신분은 망각한 채 마치 진료평론가(?)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한다면, RSCI Meeting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본인의 케이스도 반드시 제출해서 다른 선생님들께 관람 당해야 하므로 두 입장에 서서 타인과 자기를 들여다 보게 된다.
Study Group이라는 게 본래 진료철학을 공유하는 모임이긴 하지만 각 나라별 Study Group의 관심 있는 주제까지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 관심의 차이에 의한 관점의 차이는 이질적이지 않은 범위 내에서(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Study Group이므로) 충분히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다음 호에 계속>
글. 상무미르치과병원 류경훈 원장